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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의 봄이 개봉하자마자 흥행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서울의 봄은 많은 분들이 아시는 것처럼 12 · 12 사태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실화바탕의 영화입니다. 오늘은 서울의 봄 실화 및 실존 인물을 총 정리해 드리니 영화 보러 가시기 전에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서울의 봄 기본 정보

 

 

  • 영화 서울의 봄은 2023년 11월 22일 대개봉하였습니다. 영화는 12세 관람가로 총 러닝타임은 141분입니다. 배급은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에서 맡고 있으며 1212 사태를 모티브로 제작되었습니다.

 

  • 김성수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으며 주요 배역에는 황정민, 정우성, 이성민, 박해준, 김성균 배우가 열연하였습니다. 특별출연으로 정만식, 정해인, 이준혁 배우가 출연하니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 현재 평점 9.57점으로 높은 평점을 기록하고 있으며 누적관객 수 189만 명을 돌파하였습니다. (2023.11.28 기준)

 

 

 

 

 

서울의 봄 배우와 실존 인물

 

황정민 - 전두광 (전두환, 보안사령관)

황정민은 전두환을 모티브로 한 전두광역을 맡았습니다. 전두환은 1212사태1212 사태 신군부 세력이자 반란군의 주동자이며 1212 사태로 권력을 장악합니다. 1980년 3월 최규하에게 중앙정보부 부장직을 요구하고 광주민주화운동을 진압합니다. 이후 국보위를 조직하고 상임위원장을 역임하였으며 이듬해 체육관 선거인 간접선거를 통하여 대한민국 11,12대 대통령 선거에 당선됩니다. 독재 정권을 이어오며 폭정을 일삼은 전두환은 1987년 6월 항쟁으로 대통령직에서 내려오게 됩니다.

 

 

 

 

 

정우성 - 이태신 (정태완, 수도경비사령관)

정우성은 정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을 모티브로 한 이태신 역을 맡아 연기하였습니다. 1212 사태 당시 수도경비사령관으로서 신군부 세력에 맞섰습니다. 신군부 세력의 승리로 45일간 조사를 받고 6개월 동안 집안에만 갇혀 지냈습니다.  1980년 육군 소장으로 강제 예편되었고 김영삼 정권이 전두환, 노태우를 잡아들여 수사할 당시 증인으로 채택되어 "한 때는 함께 국방에 열심을 다하던 입장이었는데 어쩌다 그리되었는지 모르겠소"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이후 한국 증권 전산 회장, 재향군인회장 및 16대 국회의원을 지냈습니다. 

 

 

 

 

 

이성민 - 정상호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이성민은 당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모티브로 하는 정상호 역할을 맡았습니다. 정승화는 대한민국 제 22대 육군참모총장으로 하나회를 해체하려고 했던 인물입니다. 이에 전두환이 1차 타깃이 되었고 1212 사태로 인하여 12월 13일 해임되었습니다. 이후 보충역 이등병으로 강등되었으며 동시에 국군보안사령부로 압송당해 모진 고문을 당했습니다. 이등병으로 강등된 그는 그동안의 급여를 몰수당하고 군인연금 수급권을 빼앗기게 됩니다. 

 

 

 

 

 

박해준 - 노태준 (노태우, 9사단장)김성균 - 김준엽 (김진기, 헌병감)

박해준은 전두환의 오른팔이자 대한민국 13대 대통령이 되는 노태우를 모티브로 한 노태준 역을 맡아 열연하였습니다. 

당시 노태우는 전두환과 함께 하나회의 중요 일원으로 전두환을 따라 1212 사태를 일으며 군사 반란을 주도하였습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6 29 선언을 발표하며 대통령 직선제를 받아들였고 13대 대통령으로 당선됩니다. 

 

 

 

 

 

김성균 - 김준엽 (김진기, 육군본부 헌병감)

김성균은 김진기 육군본부 헌병감을 모티브로 한 김준엽 준장역을 맡았습니다. 김진기 헌병감은 1212사태를 진압하려고 한 인물로 전두환이 정권을 장악한 후 강제 예편되어 농사를 지으며 삽니다. 이후 일본 연구소에서 지정학을 연구하기도 하였습니다. 김영삼 정부에 이르러 한국토지공사 이사장을 역임하였으며 1993년 전두환을 내란죄로 고발하였습니다. 

 

 

 

 

 

 

 

 

서울의 봄 실화, 12 · 12사태

 

12 ·12 사태의 배경 사건

 

  • 10 · 26 사태로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전국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됩니다. 이때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은 계엄사령관이 되었고 최규하 당시 국무총리를 헌법에 따라 대통령 권한 대행을 맡게 됩니다.

 

 

  • 그 시점 육군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 소장은 10 · 26 사건을 수사하는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됩니다. 전두환은 군내 비밀사조직인 하나회를 결성하고 있었습니다. 

 

  • 정승화 계엄사령관은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주기 위해 하나회를 해체시키려는 움직임을 시작합니다. 그에 따라 서울의 수도경비사령관에 육사 출신이 아닌 장태완 장군을 임명하였습니다. 

 

  • 전두환과 하나회 회원들은 이에 반감을 품고 전두환을 필두로 하여 정승화 장군을 끌어내린 뒤 쿠데타를 일으키려 합니다. 전두환은 당시 수사를 맡고 있는 합동수사본부장이었기에 명분을 만들어낼 수 있었고 그 시행일을 12979년 12월 12일로 결정하게 됩니다. 

 

 

 

 

 

 

 

12 ·12 사태의 전개 과정

  • 1979년 12월 12일 저녁 전두환이 이끄는 반란군은 계엄사령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10 · 26 사태의 연관 인물로 엮어 체포하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작전명은 '생일집 잔치'로 반란에 동조하는 하나회 회원들은 수도경비사령부 30 경비단장실에 모여 있었습니다.

 

  • 이때 하나회가 아닌 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 특전사령관 정병주, 육군 헌병감 김진기 등을 연희동 만찬에 초대하여 육군참모총장을 체포하는 동안 발을 묶어두려 합니다.

 

  • 계엄사령관 정승화를 체포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재가가 필요했습니다. 전두환은 최규하 대통령을 찾아갔으나 최규하는 국방부 장관이 동석하지 않아 재가를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전두환을 돌려보냅니다.

 

 

  • 반란군은 재가를 얻지 못하자 체포 후 사후 재가를 받기로 하고 육군참모총장의 공관으로 향합니다. 정승화 총장을 불법 체포에 반항하였고 반란군과 공관 경비병들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졌습니다. 이에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은 납치되었고 육군 본부는 수도권 전역에 진돗개 하나를 발령합니다.

 

  • 반란군은 정태완 장군을 회유하려 하나 정태완 장군은 전두환 일당을 반란군으로 설정하고 진압에 나섭니다. 정병주 특전사령관도 특전사에 출동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이미 수도권의 1, 3, 5 공수여단이 반란군에 가담한 상태였습니다. 

 

  • 이에 인천 부평에 위치한 9 공수여단이었던 윤홍기 준장만이 서울로 출동하게 됩니다. 반란군은 1 공수여단을 철수시킬 테니 9 공수여단을 철수시키라며 신사협정을 제안합니다. 당연히 거짓이었습니다. 9 공수여단은 잘못된 판단으로 철수하게 되고 결국 1 공수여단은 서울로 진입하게 됩니다.

 

  • 반란군은 용산 국방부, 육군 본부, 특전사령부 모두를 장악합니다. 마지막까지 대항하던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은 교전을 포기하고 반란군은 승리를 쟁취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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